미국 유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용인 한국외대부속외국어고 영어과 2학년 홍석영군은 70%정도 완성된 자신의 졸업논문 마무리 작업에 바쁘다. 100% 영어로 쓰여진 홍군의 논문 주제는 ‘주식시장의 변동 예측(Predicting the Variations of The Stock Market)’.
“지난 겨울방학 때 증권업협회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채권·증권시장을 움직이는 요소들에 관해 큰 흥미를 갖게 됐어요. 경제관련 학과를 전공한 뒤 투자 은행에서 일하고 싶은데, 훌륭한 예습을 하는 셈이죠.”
홍군은 이 학교에서 ‘특별한 학생’이 아니다. 모든 재학생들이 졸업 전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세계 유수 대학에서 합격통지서가 온들 졸업 논문 없이는 어림도 없다는 얘기다. 단 ‘점수’대신 ‘통과’로, ‘전문성’보다는 ‘열정’을 큰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 2학년인 1회 졸업생들의 논문 마감 기한은 오는 12월 29일. 하지만 20페이지 안팎의 분량에다, 국제반의 경우 무조건 영어로만 써야 하니 그 무게감은 만만치 않다.
요즘 학생들은 짬을 내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팀을 짜서 미팅을 갖거나, 지도 선생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논문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다가서고 있다. 전공 학문을 미리 예습하거나 흥미를 가졌던 분야와 사회 현상을 심층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훌륭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생물학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는 2학년 영어과 신재호 군이 택한 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희망 전공과는 별로 관계 없지만, 미국 역사 수업을 들으면서,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대학살이라는 사실(史實)에 가려진 알려지지 않은 정황들, 약자들의 반응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어요.” 이 논문의 지도 교수는 원어민 교사인 마이클 허트 선생님. 덕분에 영어 실력도 함께 갈고 닦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영어과 서상아 양도 급우 손만휘·김희재 군과 함께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 함께 논문을 쓰기로 했다. 서 양은 “인권·여성 관련 NGO 사람들도 찾아보고, 여성 노동자들과도 만나는 등 현장 경험을 가능한한 많이 쌓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 논문’을 학사 일정에 포함시킨 게 외대부속외고가 처음은 아니다. 대안학교인 성남의 이우학교 역시 고교 졸업생 전원이 관심 분야에 대한 논문을 쓰고 지난 2월 이를 논문집으로 내 화제를 모았다.
2학년 학생들의 논문 작성 기간은 8개월. 정식 대학 논문에 비해 엄격함이 덜 하다고는 해도 논제 선정·내용요약(Abstract)·서론 작성·교정 등 일반적인 논문 작성 절차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 학교 정의원 연구부장은 “실제 논문형식의 글을 쓰면서 틀과 격에 맞는 글쓰기를 효율적으로 익힐 수 있게 된다”며 “졸업 전 책자로 인쇄해 진학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정지섭기자(블로그)xanadu.chosun.com
